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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갑신년 갑신년 중추 칠산바다의 월식 ⑩

2021-07-27 15: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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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경제신문 임해정 기자]

앙얼은 ‘죽막동 철마전설’의 골갱이를 이렇게 풀어냈다.

수성당 옆 해변마을인 죽막동의 다른 지명은 대막골이다. 죽막동처럼 대나무와 관련이 깊어 그런 지명을 얻게 되었다.

‘죽막동 철마전설’은 ‘대막골 철마설화’라는 명칭도 갖고 있다. 작은 시골마을에 전해오는 명칭인지라 뭐가 맞는지 정확히 분간하는 이도 드물다.

설화는 하나의 민족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모든 이야기를 일컫는다. 신화와 전설, 그리고 민담을 포함한다.

전설은 신화와 달리 신의 이야기를 골격으로 삼지 않는다. 인간의 이야기가 골자다. 주로 땅이름이나 자연물에 깃들었다.

죽막동, 다시 말해서 대막골의 ‘철마전설’ 또는 ‘철마설화’가 전설인지, 신화인지, 구분하기란 난감한 일이다. 한편에서는 개양할미 즉, 수성할미 신화를 이 ‘철마전설’ 또는 ‘철마설화’에서 찾기 때문이다.

아무튼 앙얼은 주린 배 부여잡고 몸뚱이 달라붙는 물것들을 내쫓으며 ‘죽막동 철마전설’의 뼈대만 전했다. 앙얼은 곁눈질로 주뱅을 살펴본다. 주뱅은 촌평 한마디 없다. 그러자 앙얼의 곁눈에 부아가 돋는다.

별주부전이나 수궁가에 등장하는 남생이는 토끼를 속여 용궁으로 끌고 갔다. 그런 허물 때문에 사람들은 남생이를 허땜쟁이로 여긴다.

앙얼은 주뱅의 깨복쟁이 고향 친구다. 지난봄부터 가끔가끔 주뱅은 앙얼을 말하는 남생이로 취급한다. 허풍쟁이나 거짓말쟁이로 대하는 까닭을, 앙얼은 알지 못한다.

‘그려 빙신 고운 디 있을 턱이 읎제!…’

앙얼은 혼잣소리를 내뱉은 뒤, 풀숲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위도 너머 수평선 뒤편으로 해가 뚝 떨어지고, 적벽강 위로 휘영청 솟아오른 달이 둥근 얼굴을 또렷하게 드러내자, 물것들의 앵앵거림이 잦아들었다. 앉아 있는 주뱅도, 누워 있는 앙얼도, 달라붙는 물 것을 잘싹 때려잡거나 물리고 뜯겨 가려운 데를 뽁뽁 긁는 횟수가크게 줄었다.

배 주림과 정 주림에 지친 앙얼의 눈에 졸음이 쏟아지는가 보다. 금세 곯아떨어진 앙얼을 내려다보던 주뱅이 괴춤에서 비수를 꺼내든다.

벌떡 일어난 주뱅이 자리를 뜬다. 오른손에 비수를 든 주뱅의 발걸음은 수성당 가는 오솔길로 향한다.

중추 칠망에 뜬 달빛 아래 죽막동 시누대숲에서는 난데없는 주뱅의 발기척에 놀란 들짐승과 날짐승의 움직임이 날렵하다. 또아리를 틀고 있다가 주뱅의 짚신을 타고 넘는 뱀도 있고, 하마터면 주뱅의 짚신에 꼬리를 밟힐뻔한 들쥐도 있다.

주뱅이 수성당 입구에 다다르자, 꿩 두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랐다. 꿩을 낚아채려는 듯 어디선가 수리부엉이 한 마리가 날아왔다. 주뱅의 봉두난발을 스치고 지나간 수리부엉이는 꿩을 놓쳤다.

달밤 대숲에 갑자기 날아든 수리부엉이가, 주뱅의 외눈엔 독수리보다 더 크게 보였다. 깜짝 놀란 주뱅은 비수를 허공에 너댓 번이나 휘저었다. 주뱅의 가슴은 한참 동안 탈싹거렸다.

“어이고, 씨부랄!…”

주뱅이 나지막하게 내뱉은 혼잣말이다. 벌름거리는 심장이 제멋대로 뛰자 자책을 느껴서 하는 말이다.

위도 하왕등도(下旺嶝島)에서 태어난 주뱅은 스무 해 가깝게 해적질로 빌어먹었다. 하왕등도는 위도진(蝟島鎭)에 딸린 작은 섬으로 상왕등도(上旺嶝島) 곁에 떠있다.

앙얼도 위도 하왕등도 출신이다. 역시 근 스무 해 동안 해적질로 살았다.

거의 반평생을 해적질로 살아온 자가 수리부엉이 한 마리에 놀라 사지를 달달 떨고, 맞방망이질을 치는 심장 때문에 몸을 움직일 수 없다니, 주뱅은 자신이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심장의 두방망이질은 줄담배 두어 대 피울 참이 지난 뒤에야 누그러졌다. 몸과 마음을 추어올린 주뱅은 조심조심 수성당 경내로 들어섰다.

‘수성당 안 지셋상에 밥 한그륵이라도 있어야 될턴디, 참말로 꺽정이고만 잉!…불쌍헌 앙얼이 저 새끼 저러다 굶어 뒈지게 생겼는디, 개양할매 지발 부탁허요, 더도 말고 들도 말고 수성당 안이서 지발 밥 한 그륵만 둘러먹기 혀주시오!…’

주뱅은 속으로 이런 기도를 올리며, 수성당 당집 뒤뜰에 발을 내디뎠다. (계속)

임해정 기자 emae9031@thekp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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