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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갑신년 중추 칠산바다의 월식 ⑦

2021-06-08 14:4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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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경제신문=임해정 기자]

“수우 수성당 저어 저 짝으로 잉 으으 으떤 새끼가 기이 기어오는갑다.”

시누대 대숲에 몸을 숨긴 뒤, 숨을 헐떡거리며 앙얼이 내뱉은 말이다. 다시 말더듬증이 도졌다.

“글씨!…”

시누대 대숲 너머 저 멀리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턱이 없는 주뱅이 귓문을 크게 열어 둔 채 하는 말이다. 별 관심이 없다는 듯 퉁명스럽지만 이자 역시 긴장할 수밖에 없다. 멎지 않는 개 짖는 소리가 달갑지 않기는 매일반이다.

“쪼까 더 안짝으로 들어가야 쓸랑갑다. 으떤 새끼가 열로 기어오는진 몰러도 그 새끼허고 우덜허고 쌍판대기를 맞대믄 참말로 먼일이 날지 모릉께 어여 안짝으로 더 들어가자!”

주뱅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앙얼이 또 떠듬떠듬 입술을 뗀다.

“주우 주뱅아! 니이 니가 알득기 나아 나가 말여 어엇 엊저녁부텀 바아 밥 한 숟꾸락 모오 목구녕으로 넘긴 적이 으읍 읎잖냐! 그을 글다봉께 시이 시방 내에 내 배에 배창시서 거얼 걸신 든 그으 그시랑들이 모옥 목구녕으로 기이 기어 나올라고 이임 임뱅지랄들을 떠는 것 같은디, 이이 이러다 잉! 나아 나 참말로 구으 굶어 뒈지는 거 아아 아닐꺼나?”

이렇게 푸념을 늘어놓지만 앙얼이 주뱅의 제안을 떨치기 힘들다. 만에 하나 해적 두 사람이 죽막동 시누대 대숲에 숨어 있다는 소문이 격포진 관아에 알려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만약 해적 출몰 소식이 전해지면 격포진 수군이 죽막동으로 우르르 몰려 들 것이다. 수군은 수성당 일대를 샅샅이 뒤질 것이다. 곧 달이 뜨기에 수군은 두 명의 해적을 어렵잖게 찾아 낼 것이다.

그리된다면 주뱅과 앙얼은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다.

최근 변산반도 일대 바닷가에서는 끔찍한 살인사건이 서너 건 발생했다. 추석 명절을 닷새 앞 둔 이레 전, 주뱅은 내소사 근처 왕포에서 뱃사람 한 명을 살해했다. 비수로 목을 찌르고 뱃구레와 얼굴에 난도질을 해서 뱃사람을 황천길로 보냈다.

추석 대목을 앞두고 이런 일들이 발생하자 부안현감은 물론 격포진 첨사의 눈이 뒤집힌 터다. 특히 변산반도 바닷가를 포함한 칠산바다 이곳저곳에 숨어 있는 해적들을 소탕하려고 혈안이 돼 있다.

주뱅과 앙얼도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그러니 잔뜩 몸을 사릴 수 밖에.

“으따 묻허냐? 큰 제번나기 전으 언능 들어가장께!”

이렇게 다그친 뒤, 주뱅이 앞서자 앙얼이 마지못해 발을 뗀다. 추석 뒤끝이라 술은 없더라도 분명 떡고물이라도 남아 있을 수성당을 눈앞에 두고 발길을 돌리자니 못내 섭섭해서다.

시누대는 왕대와 다르다. 멀대 같이 키가 크지 않다. 줄기래야 제 아무리 굵어도 사람 손가락 굵기다. 어울려 선 본새도 다르다. 왕대는 띄엄띄엄 서서 하늘을 우러러보지만 시누대는 빽빽하게 우거져 살아들간다. 죽막동 대숲의 시누대 역시 그 어울림이 어찌나 촘촘한지 그 밑동 사이로는 생쥐나 참새조차 들락거릴 틈이 없다. 뱀도 몸통이 굵은 구렁이는 기어 다니기 빠듯할 법하다.

주뱅이 뒷괴춤에 찔러 둔 비수를 꺼내 오른손에 꼬나들고 시누대 밑동을 사정없이 내리친다. 걸어 들어갈 길을 트려하지만 여의치 않다. 키는 작고, 줄기는 가늘지만 화살에 쓰이는 시누대가 주뱅의 비수에 제 몸을 쉬 내줄리 만무하다. 사람의 몸엔 푹푹 박히는 비수라 주뱅은 자신 있게 칼을 휘둘러보지만 무리진 시누대는 쉽게 길을 터주지 않는다.

“미치것고만 잉!...”

주뱅이 이마에 맺힌 땀을 왼손으로 훔치며 짜증을 낸다.

“내에 내락읎이 어어 어쩌 또 이임 임뱅 지이 지랄을 떠냐?”

앙얼이 시비를 걸지만 주뱅은 애꾸눈을 뒤집어 깔 뿐이다. 앙얼의 입에서 어떤 대책이 나오길 기다리는 낌새다.

앙얼이 대숲의 성긴 틈새를 찾아내 길을 튼다. 열 보쯤 뒤로 걸어가니 시누대가 듬성듬성 난 에움길이 눈에 띈다.

앙얼이 앞장을 서자 주뱅이 그 뒤를 따른다. 날카로운 댓잎이 얼굴을 할퀴고, 청미래 덩굴이 팔뚝을 스친다. 두 사람의 몸엔 생채기가 난다.

대숲에 숨어 있던 물것들이 달려든다. 두 사람의 몸과 옷에서 나는 쩐내 탓도 있겠지만 생채기에서 풍기는 미미한 피비린내 탓이 더 큰 듯하다. (계속)

임해정 기자 emae9031@thekp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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