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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소성 있는 다육식물 재배, 귀농 50代의 '인생역전'

2021-05-31 14:50:51

'이랑이랑' 최금단(62. 충남 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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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경제신문=임해정 기자] 최근 관엽식물인 난 종류 대신 다육식물이 각광받고 있다. 다육식물은 말 그대로 ‘많은 육즙’을 가진 식물을 가리키는데, 선인장과 알로에 등이 대표적인 다육식물 품종에 속한다. 일반적으로 다육식물은 성장할수록 가격이 오르는데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10배 이상 오르기도 한다. 특히 다육식물은 원산지가 남아프리카 사막인 만큼 극한의 환경에서도 자랄 수 있을 정도로 자생력이 뛰어나다. 기르는데 손이 많이 가는 화초나 난에 비해 비교적 적은 노력으로 재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초보 귀농인들에게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충남 서천에서 상품의 희소성을 바탕으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다육식물 농장 '이랑이랑'을 운영하는 최금단 대표를 찾았다.

# 다육식물 키우며 지역 사랑방 만들고파

최금단 대표는 귀농전에 서울에서 남편과 같이 28년간 숙녀복을 만드는 일을 했다. 재단부터 완성까지 전 과정을 남편과 하면서 열심히 앞만 보고 달렸다. 어느덧 50을 넘어 한 템포 쉬어갈 준비를 하던 최 대표는 시골살이를 선택했다.

"참 열심히 치열하게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 시골에 가서 자유롭게 살고 싶어지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10여 년 전부터 해왔던 수석 수집(남편)과 도자기 굽는 도예를 취미로 했던 것이 귀농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도시에서 살았지만 주말이면 수석 수집을 위해 전국을 누비고 다니면서 자연스레 자연에 동화된 겁니다. 또 나중에 시골에 내려가서 내가 만든 도자기에 다육식물을 키우는 사랑방을 열어 지역 주민들과 함께 생활하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습니다."

최 대표의 꿈은 결국 다육식물 농장주로 이어졌다. 2015년 충남 서천으로 귀농 후 매년 꾸준히 다육식물을 늘려가면서 농장의 규모를 키웠다. 다육식물 20여 가지로 시작, 직접 발품을 팔아 늘린 것이 이제는 700여 종류에 이른다.

"서천은 남편의 고향이에요. 남편이 서천으로 가자고 했고 저도 이견이 없었어요. 다만 고향에서 떠나온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고향에 돌아간다고 해도 기존의 귀농인들과 다를 바 없이 서먹하달까. 적응하고 융화되는데 조금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한 번은 저희 농장 뒤에 경사가 있는 텃밭이 있는데 그곳을 사용하기 편하게 개발하는 과정에서 토지 주인과 실제 사용하고 있는 분과의 갈등에 저희까지 연관되면서 약간의 트러블이 있기도 했죠. 결국 저희가 나서서 중재한 끝에 사이가 좋아지게 됐으며 지금은 그 밭을 저희가 경작하고 있어요."

농장을 열기 전 최 대표는 서천군내 다육식물 시장조사부터 시작했다.

"서천군에 있는 화원 숫자를 조사해봤더니 28개 정도 화원이 있더라고요. 손님처럼 들어가서 화원 내부를 보고 다른 화원에 가서 또 둘러보고 발품을 팔아서 시장 조사를 했습니다. 조사해 보니 다육식물 소비층이 별로 없어 보였고 다육식물 종류도 많지 않더군요. 그래서 기존 화원들과 달리 다육 농장을 카페처럼 운영하면 소비자들의 눈길도 끌고 색다른 체험공간이 돼 좋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그러한 노력 덕분에 이랑이랑 농장에는 다른 농장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품종이 있다. 시중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품종의 다양화를 통해 희소가치를 높여 경쟁력을 쌓았다. 이는 최 대표가 기존 농가들이 보지 못한 틈새시장을 공략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유행을 좇아 재배하지 않고 이랑이랑 농장만의 품종을 재배한 것이 농장 성공의 핵심 요인이었다.

# 다육식물 키우는 법 온전히 스스로 터득

귀농 후에는 서천군 농업기술센터에서 주관하는 농업대학교를 다녔다. 1년 동안 창업 교육을 받았는데, 다육농장 창업에 큰 도움이 됐다. 이후 발효식품교육을 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판매, 마케팅, 경영, 관리 등 창업농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웠다.

"지금 생각해 봐도 당시에 체계적으로 농업경영을 배웠기에 안정적으로 농장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다만 다육식물을 키우는 법은 온전히 스스로 터득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정보를 얻어 기술적인 부분을 공부하고 실험을 계속해 봤죠. 또 농장에 종자를 가지러 가면서 농장주에게 모르는 부분은 물어보고 발품을 팔아서 배웠습니다. 하지만 노하우를 알려주려 하지 않는 사람도 많더라고요. 경쟁자로 생각하는 것 같았죠. 하지만 저는 관찰력이 좋아서(웃음) 기술을 빨리 습득하는 편이죠. 그 덕분에 남들보다 빨리 다육식물 관련 기술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최 대표의 다육식물을 향한 애정은 날로 뜨거워졌다. "농장을 하면서 그 자리에 안주하면 안되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핫하게 뜨고 있는 다육아트지도자 1급 자격증을 따기 위해 밤낮없이 공부했고, 원예교육 복지사 자격증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외에 농장에 카페도 접목하고 싶어서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습니다."

최 대표는 귀농 성공 요인을 꼽아달라는 요청에 손사래를 쳤다. 계획 없이 내려왔지만 서울에서 배운 도예 공예라든지 남편이 배운 목공예도 지금의 농장을 만든 기초였다는 것. 또 지금까지 모아온 수석도 저희에게 있어서는 농장을 꾸밀 수 있으니 직원과도 같다고.

"귀농귀촌하려는 사람들 대부분이 농사를 계획하지만 농촌이라고 농사만 생각하지 말고 취미로 즐겼거나 본인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활용해도 얼마든지 귀농귀촌을 해서 살수 있습니다. 발상의 전환을 조금만 하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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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풍에 다육식물 모조리 날아가기도

최 대표는 이제 다육식물을 키우며 자연속에서 여유롭게 살아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만족도가 높다. 하지만 마냥 꽃길만 걸었던 것은 아니다.

"처음에 서천에 내려와 다육식물을 키우는데 농장이라고 할 것도 없이 비가림을 할 정도 시설만 갖추고 시작했어요. 농장 앞 도로가에 노점으로 시작해서 하우스 터만 닦고 천막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해 태풍이 크게 왔어요. 바람이 얼마나 거세던지 노점에서 하던 다육식물이 모조리 날아갔습니다. 책상과 선반들도 통째로 날아가서 고랑에 처박혔어요. 당시 약 1500만 원 정도 손해를 봤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는 최 대표. 이후 하우스를 짓고 태풍에 단단히 대비하기 시작했다. 한차례 시련을 겪은 최 대표는 이제 다육식물에서만큼은 전문가나 다름없다.

"다육식물은 햇빛이나 바람을 좋아고 물은 좋아하지 않습니다. 물을 많이 주면 죽게 되죠. 몇 가지 재배 노하우만 익히면 다육식물 재배는 쉽기 때문에 청년 농부들도 도전해 볼 만합니다. 또 활용도가 높아요. 예를 들어 결혼식을 할 때 다육식물로 웨딩부케를 만들어 활용할 수도 있고 그림의 액자처럼 다육식물이 액자에서 자랄 수 있게 말들 수도 있습니다. 이런 분야에 젊은 친구들이 도전한다면 다육아트라는 시장이 커질 수도 있습니다. 꼭 농사가 아니더라도 식물로 직업을 가지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젊은이가 있다면 돕고 싶어요.:

최 대표는 이렇게 스스로 일궈나간 덕분에 반짝 대박난 귀농인들과 달리 천천히 시골살이에 적응 중이다.

"젊은 시절 돈을 벌기 위해 애쓰기도 하고 성공도 해봤죠. 인생 2 막을 시작하면서는 하고 싶고 즐거운 일을 하면서 산다면 많은 돈은 필요하지 않다는 점을 깨닫게 됐어요. 그냥 정신적으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더 중요하더라고요. 물론 젊은 청년들이 귀농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겠죠? 그러나 예비 귀농인들을 위해 제가 꼭 해주고 싶은 말은 체험, 체류형 교육 등 다양한 교육을 접하길 바라요. 교육을 받고 체험도 해보고 지역을 선택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 다육식물 체험농장 운영, 1년 200名 방문

판매는 농장이 도로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인근에 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 손님이 된다. 이렇다 보니 홍보 마케팅을 별도로 하기보다는 입소문이 나서 알음알음 찾아오는 손님도 많다. 또 구매한 구매한 손님들이 올려주는 블로그, 지인을 통해서 판매된다. 최금단 대표는 다육식물 재배와 판매에만 그치지 않고 체험농장에도 시선을 돌렸다. 기술센터에서 교육을 받으면서 체험농장까지 할 계획을 이미 세웠다고.

"농장은 다육식물을 재배하는 곳이면서 자연스럽게 체험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 2년 전부터 열었는데 반응이 뜨겁습니다. 특히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 학생들에게는 좋은 교육의 장이 되고, 일반인들에게는 또 다른 힐링의 장이 될 수 있었죠. 단체에서도 많이 오시는데 주로 도시민들이 농촌체험을 하기 위해서 오거나 지역의 동아리 단체, 지역의 협회 등에서도 많이 옵니다. 지금은 개략적이지만 1년에 200명 정도 방문하지만 점점 방문하는 층도 다양해지고 증가하고 있습니다."

최 대표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다육식물을 성장기에 어떻게 키우고 생장점이 어디에 있고 심는 방법과 여러 가지 다육식물마다 키우는 방법 등을 체험할 수 있다. 또 아이들에게는 직접 심고 가꾸며 몸으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향후에는 최 대표의 장기인 도자기나 작은 화분을 만드는 법도 프로그램에 추가할 예정이다.

"욕심이 있다면 많은 소비자들에게 좋은 물건을 싸게 공급하고 싶어요. 또 더 나은 농업인이 되기 위해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을 계획입니다."

대박 수익을 내기보다 선견지명을 가지고 미래를 위해 내실을 기한 것이 이랑이랑 농장의 오늘을 있게 했다. 단순한 유행을 좇아 사업에 도전하는 전략보다는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고부가가치를 가진 사업에 도전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최금단 대표를 통해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임해정 기자 emae9031@thekp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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