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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주원의 대하소설 ‘파시’] 갑신년 중추 칠산바다의 월식 ④

2021-04-19 13: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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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임해정작가


갑신년 중추 칠망이 뜨는 날은 물때가 한사리인지라 칠산바다는 적벽강 갯바닥 깊은 속살까지 까발렸다. 오시(午時) 경, 물참 때가 되자 적벽강에도 칠산바다의 밀물이 들기 시작했다.

이틀 전인 갑신년 중추절 해거름 때부터 하늘을 뒤덮었던 먹구름은 사라졌으나 여전히 칠산바다엔 갯바람이 거칠다. 밀물이 나자 벼락바람이 윙윙거린다. 하얀 게거품을 뒤집어쓴 칠산바다의 물너울은 육지를 집어삼킬 듯 치렁댄다.

서너 식경이 지나자 채석강과 적벽강엔 벼락바람이 몰고 온 물벼락이 떨어졌다. 여울굴 입구 칠십 척 적벽도 앉은벼락을 당하는 꼴이다.

태고적 개양할미가 여덟 딸과 함께 살았다는 여울굴에 칠산바다의 성난 너울이 하얀 갈기를 곧추세우고 세차게 밀려든다.

바닷물이 밀려들 때면, 칠산바다는 여성의 샅 안쪽 같은 여울굴 구석구석의 기암괴석을 할퀴며 암벽 몇 점이라도 떼어내려는 듯 용을 쓴다. 그럴때마다 천지를 뒤흔들고도 남을 만한 굉음이 울려 퍼진다. 그 요란한 울림엔 귀신의 곡소리도 섞인 것같다. 그러다 보니 제아무리 강한 심장을 가진 사람도 금세 오슬오슬 몸을 떨며 오한을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온몸으로 암벽을 때리던 바닷물이 칠산바다로 빠져나갈 때면, 여울굴은 어머니의 품속같이 포근하다. 여울굴에 잠시 잠깐 머물다 몽돌 사이로 빠져나가며 읊는 칠산바다의 노랫소리는 마치 잘난 자식도 못난 자식도, 고운 자식도 미운 자식도, 가리지 않고 품어 삐쩍 말라비틀어진 젖꼭지라도 배가 고파 칭얼대는 아이의 입에 물린 뒤, 잠을 재우며 부르던 우리네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 같다.

유시(酉時)와 술시(戌時) 경계쯤, 멀리 위도 너머의 수평선 뒤편으로 붉은 해가 떨어졌다. 바람은 세차지만 하늘은 맑은 터라 하늘과 바다엔 진홍의 노을이 남았다.

그럴 때쯤 윙윙 울어대는 죽막동 시누대 대숲에서 봉두난발의 사내 두 명이 두리번두리번 빠져나왔다. 차림이나 낌새로 보아 때론 칠산바다를 누비고, 때론 변산반도에 몸을 숨기는 해적의 무리로 뵌다.

그자 중 한 사람은 애꾸눈이다. 구릿빛 얼굴에 박힌 골 깊은 주름살로 헤아리자면 낫살은 좀 먹어 보인다.

또 한 명은 관자놀이에 한일자로 깊이 팬 흉터가 있다. 아마도 소싯적에 칼침을 맞은 것 같다. 이자의 나잇살 역시 사십 대 후반으로 뵌다.

죽막동 시누대 대숲에 난 좁디좁은 오솔길을 따라 걷는 두 사람의 치아는 가관이다. 몇 개 남지 않은 누런 이가 알이 거의 빠진 옥수수 같다.

상체를 바짝 낮춘 채 사방을 경계하며 줄지어 걷는 두 사람의 눈은 온통 핏빛이다. 왼쪽 눈이 먼 애꾸눈의 외눈깔도 그렇고, 관자놀이에 칼침 흉터가 있는 자의 움푹 팬 두 눈도 그렇다. 수성당 너머 진홍빛 노을이 그들의 눈에 가득 내려앉은 탓이리라.

“수성당 안에 떡도 읎고, 과일도 읎으믄, 앞으로 주뱅이 니 새끼 말은 콩으로 메줄 쑨다혀도 믿덜 않는다 잉!”

얼굴에 칼침 흉터가 있는 자가 이렇게 말하자 애꾸눈 주뱅이 툭 불거져 나온 외눈깔을 부라린다.

“그리서 앙얼이 니 새낀 여글 가나 저글 가나 맨날 찬밥신셀 면치 못허는 것여!”

도대체 무슨 말이냐는 듯 앙얼이 노을에 물들어 온통 핏빛인 두 눈을 멀뚱거린다.

“깨복쟁이 고향 칭구도 믿덜 못 허는 니놈을 이 시상에 언놈이 믿것냐? 그리서 넌 새꺄, 으딜가나 사람 대접을 못 받는 것이여 임마!”

핏빛 노을에다 걸신까지 들어앉은 듯한 두 눈을 연신 굴리던 앙얼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속말을 내뱉는다.

“내에 내가 임마, 니 새낄 미잇 믿덜 못혀서 그러는 것이 아니랑께 그러네!”

“수성당 안에 처먹을 것이 읎으믄 어찌고 저찐다고, 아까부텀 너 멫 번을 씨부렁거렸는디, 대관절 묻 땜시 이러냐고, 시방?”

“시일 실은 말이여, 그 하알 할매가…”

“할매라니? 너그 할매가 우리 할매가?”

“개에 개양할매가…”

“무신 개떡 같은 소리여! 글씨 개양할매가 누군디?” (계속)

임해정 기자 emae9031@thekp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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